잠자리야설

일반 | 빗속의 여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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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궁예 작성일14-01-14 17:44 조회6,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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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여인
창작. 청산리
그날도 비가 억수로 내렸다.
아침부터 지척이며 내리든 비가, 오후를 알리는 시보를 따라
약속이나 한 듯이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쏟아 부었다.
차 속에 우산을 둔 채,
갑자기 쏟아지는 비속에 주춤거리다, 함빡 비를 뒤집어 쓴 나는,
엉겁결에 자그마한 빌딩이 이어진 통로로 뛰어들었다.
잠깐 사이에 러닝셔츠에 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다.
함초롬히 비를 뒤집어쓴 나처럼,
빗물에 흠뻑 젖어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뜨리며,
정신이 없이 뛰어든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도 엉겁결에 비를 피하려 뛰어들다가, 나와 부딪치고 말았다.
나도 당황했거니와 그녀는 내게 밀려, 놀래며 넘어지고 말았다.
얼른 그녀를 부축하였으나, 이미 바닥에 주저앉은 뒤 였다.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부드러운 탄력이 짜릿하게 전해왔다.
"미안합니다. 이거......."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그녀를 보며 미안해했다.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고개를 까닥하고 얼른 돌리고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기 시작했다.
흠뻑 젖어서 빗물을 훔쳐내는 모습이, 그냥 보기가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이런 정경이, 레코드가게에서 들려오는 채은옥의 "빗물"처럼, 어찌 낭만적이라 고만 할 수 있으랴?
베이지색 원피스가 뽀오얀 우유빛 살결과 잘 어울리면서,
비에 젖어 착 달라붙은 그녀의 몸매는,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흐트 러져 있으면서도,
원숙한 육감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늦가을의 빗물은 꽤나 써늘하게 살갗을 파고들어서,
그녀의 입술을 파란 크레파스로 푸르스름하게 그려놓았다.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하얀 목덜미를 타고 든 다소 무례한 빗물을 연신 훔쳐내고 있었다.
봉긋한 가슴사이로, 파고든 빗물이 브래지어를 적셨던 모양이었다.
머리결도 흠뻑 젖어서, 아직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점퍼를 벗어 대충 훔친 뒤, 문득 뒷주머니에 손수건이 챙겨져 있다는 생각에 미쳤다.
개어둔 채 뒷주머니에 숨겨있던 손수건을 꺼낸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 앞으로 가만히 내밀었다.
"이걸 쓰시겠습니까?"
동그란 눈이 놀랍다는 듯이 커졌다.
"아아뇨, 괜찮아요."
몸을 사리며 수줍어했다.
"괜찮은 걸로 하자면, 이 쪽은 더 그렇습니다. 깨끗한 수건이니 쓰 셔도 좋습니다."
그녀의 앞에 내밀며, 눈을 마주보았다.
잠깐동안 망설이는 듯 하더니, 경계하듯 조심스럽게 살피고, '어떻 게 할까?' 하고 주저하다가,
마음을 정한 듯 두 손을 모아 받으며,
"감사합니다. 미안해서........"
"천만에요. 거절하면 어쩌나 했어요?"
가볍게 농담을 하였더니.
"고마워요! 친절에......."
고개를 까닥하며 조금 마음을 놓은 듯, 미소가 얼굴에 퍼졌다.
나쁘지 않는 인상으로 자상하게 마음을 써준, 나의 친절한 태도가
가라앉은 그녀의 기분을 조금은 들뜨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눈길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젖은 머릿결에서 싱그러운 냄새가 났다.
라면처럼 볶아 놓은 그녀의 퍼머머리는, 전형적인 주부의 모습을 하고있었고,
베이지색 원피스가 그녀의 하얀 살결과 더불어 잘 어 울렸다.
비를 맞은 뒤의 물기를 함빡먹은 풀처럼, 의외에도 그녀는 싱그러 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35쯤 되었을까?
어딘지 모르게, 은은한 향기를 품은 여성이었다.
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이, 이제 막 다가온 중년의 원숙함을 과시하고 있었고,
보기좋은 모습으로 여성의 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하얀 살결이 눈에 시렸다.
"고맙습니다. 죄송해서 어쩌지요? 빨아 드릴 수도 없고........"
젖은 수건을 쥐어짜고, 가지런히 접어서 내밀며 그녀가 말했다.
"천만에요, 도움이 됐는지요?"
"미안해서 어쩌나..... 쓰시지도 못하고 제게 주어서....."
그윽한 눈으로 고마움을 대신하며 미안해했다.
"뭘요,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저엉 미안하시면 커피나 한잔 사주 셔도 됩니다."
이대로 헤어지기가 어쩐지 아쉬워서, 말을 걸어 그녀의 반응을 은근 히 떠보았다.
잠간 망설이는 듯 생각하더니, 뜻밖에 선선하게 대답을 했다.
"그래요. 그럼 제가 대접해 드릴께요."
의외의 대답에 다소 흥분하여 비속을 뚫고, 얼른 차에 있는 우산을 가지고 왔다.
"자, 가실까요?"
그녀를 보호하듯 우산을 받쳐주고, 내 차 쪽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심술궂은 빗줄기는 제 마음대로 그녀를 향해 뿌려댔다.
우산을 세워도 보고, 낮추어도 보면서, 빗방울이 그녀에게 뛰지 않도 록 신경을 쓰느라고,
정작 나는 비에 또다시 젖고 말았다.
미안해진 그녀는 내 쪽으로 바짝 붙어서서, 그녀를 보호해주는 네게 "죄송해요. 비에 다 젖으시겠어요.
이쪽으로 더 다가서세요."
하고는 몸을 낮추며, 고개를 까닥했다.
"아아뇨, 괜찮습니다."
이왕에 맞은 비, '더 젖으면 어떠랴.'하는 심정이었다.
줄기차게 퍼붓던 빗줄기는 변덕을 부리며, 가늘어졌다가 금새 험상궂은 얼굴로 세차게 뿌려댔다.
그녀에게 바짝 붙었다.
젖은 몸이 몇 번이나 부딪혔다.
탱탱한 탄력이 기분 좋은 느낌으로 전해왔다. 옴팍하게 고인 물을 둘이서 발을 맞추고,
"이영차!"
하고 뛰어 넘었다.
'기웃둥'하고, 중심을 흐트러뜨린 그녀의 허리를 재빠르게 잡아 세웠다.
발그래진 그녀의 볼이 능금처럼 익었다.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르기를 권했다. 동그란 동공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우선 타시죠. 빗줄기가 거셉니다."
미쳐 대답할 사이도 없이 차안으로 밀었다. 엉거주춤 그녀가 차에 올랐다.
............................................................ 빗방울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테이프를 갈아넣었다. 대중가요나 팝송을 구분하지 않고, 서너 개 식을 녹음해두고 항 상 즐겨듣곤 했었던 참이었다.
해리 닐슨의 "Without You"가 흐르기 시작했다. 잔잔한 선율이 촉촉하게 마음을 적셔왔다.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비치어보더니, 대충 화장을 다듬던 그녀 가, 어느틈엔지 리듬에 맞춰 발을 까닥이고 있었다.
유익종의 노래가 이었고, 노랫말 처럼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 도' 좋은 사람이었다.
멜라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이 애잔하게 흘렀다.
터질듯한 사프카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호소하듯 몸짓했다. 그녀의 눈에 언듯 눈물이 비췄다.
젖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발라내었다. 그녀의 손을 가만히 쥐어주었다.
눈물로 글썽한 눈이 슬픔을 머금고 올려다 보았다.
슬픔이 진하게 배인, 그녀의 얼굴이 선하게 다가왔다.
"Rose"라고 이름이 불은 카페 앞에 차를 댔다.
장미문양이 큼직하게 걸린 문을 지나, 그녀의 손을 잡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Memory"가 카페안에 흘렀다.
가냘프게 이어지다가, 격정적인 볼륨으로 열창하는 바바라 스트 라이샌드의 목소리가 카페안을 출렁이게 했다.
의자를 밀어 앉기를 권했다. 감사의 표정과 함께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했다.
그녀는,
그녀에게서만 느껴졌던 품위와 우아함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기 시작했다.
오만하지도 않았고, 경박스럽지도 않았으며, 대화하는 도중 서로의 의사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말을 이어가는 솜씨나 언어의 구사에서,
상당한 교양을 갖추고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주었다.
오히려 그녀 쪽에서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쪽이었다.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의견을 간단하면서 조리있게 표현하면서, 상대방의 동의를 자연스럽게 얻어내곤 하였다.
새로운 호기심이 강하게 일어났다.
찬찬히 그녀를 관찰하며, 이런 여성이라면, 사귀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이긴 하지만, 친구도 될 수 있을 법한 여성임에 틀림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엷은 그늘 속에서, 잠간씩 멍하게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의 보호본능을 일깨워 주곤 하였다.
'이 여자를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찻잔 속의 진한 커피향처럼,
이끄려지는 그녀의 은근한 매력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소녀처럼 맑은 눈동자를 빨리듯 한참씩 들여다보았다.
그녀도 나도 서로의 주변에 관하여 묻지도 않았다.
성도, 이름도 사는 곳도,
싱글, 더블 이런 것 조차도
전혀 화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예방선 이었고,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서로 보호막을 쳤고, 그런 생각은 이심전심으로 서로 느끼고 있었다.
그랬었다.
우리는 서로를 "빗속의 남자" 그리고 "빗속의 여인"으로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상대를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는가? 오늘같은 날에.'
결코 가벼운 상상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거의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었고, 상대방의 느낌을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자상하게 마음을 써 준 내게 감사했고,
빗속을 뚫고 우산 까지 갖다가 바쳐준 내 마음씀에 감격을 하는 듯 했다.
마음은 촉촉하게 젖어갔다. 이제 필요한 것은 행동이었다.
그것도 남성 쪽의 부드러운 유혹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헤이즐럿의 은은한 향기처럼,
아주 부드럽고 은근한 유혹이야말로,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잡아 놓을 수 있음에, 아마 틀림없으리라...........
피아노의 전주가 감미롭게 흘렀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 잔잔하게 흘렀다.
소녀처럼 턱을 괴며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는 그녀 모습이, 넓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은은히 비추었다.
바람 속으로 걷지는 않았지만, 뚫고는 왔었다. 마른 꽃도 그런대로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외로움도 서로 마음껏 마시고 있었다.
여자는 참으로 중년여성의 심리를 잘도 그려내었다.
그윽한 눈빛을 마주하며, 곡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헤이즐럿의 진한 향을 입안에 가득 담았다.
언듯 그녀의 눈가에 다시 이슬이 맺혔다.
금새 눈물이 글썽해지며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만 같았다.
그녀의 눈물은 나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녀 곁으로 다가간 나는, 손수건으로 가만히 눈물을 닦아주었다. 부끄러운 듯 얼굴을 살짝 돌렸다.
내 손을 가만히 밀어냈다.
그녀의 손끝을 느꼈다.
젖은 그녀의 머릿결에서 풋풋한 과일냄새가 났다.
그녀의 고개를 내 쪽으로 마주하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부끄러움에 발그래 지면서도, 가만히 맡기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내 시선이 뜨거웠는지,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젖은 그녀의 머리 결을 쓰다듬으며,
눈물이 글썽한 눈을 마주보고, 마음속으로 부터 솟구친 따뜻한 정 감이, 두 사람의 사이의 거리를 무터뜨렸다.
내 가슴으로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당겼다.
그녀의 몸이 기대왔다. 손을 꼬옥 쥐어주며 안았다.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었다.
"바람도 쏘이고 드라이브도 할겸, 아주 분위기 좋은 곳으로 옮기지 않으시겠어요?
제가 이번에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권했다.
사실, 어디엔들 이곳보다 분위기 좋은 곳이 있으랴 싶었으나, 그건 문제가 아니었고, 그녀도 그걸 잘 알고있었다.
그녀는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의자를 당겨서, 그녀가 일어서도록 배려해 주었다.
봉긋하게 솟구친 가슴이 원피스 속에 착 달라붙어, 알맞게 볼록한 엉덩이와 잘 어울리고 있었다.
젖은 옷 속에서 그녀의 내음이 코끝을 언듯언듯 스쳤다.
그녀를 데리고 커피숍을 나섰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차창을 거칠게 때리는 빗속을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만히 손을 맡기고 있었다.
차갑게 굳은 손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따뜻하게 만저주었다.. 내 손을 살짝 쥐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할 듯 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허벅지위의 탱탱한 감촉이 못 견디게 좋게 느껴왔다.
넓적다리 위로 얹은 내 손을, 그녀가 두 손으로 감싸며 꼬옥 쥐어 주었다.